본 대회(PABAT! 2020)는 BMS라는 리듬게임의 스테이지를 만드는 대회입니다. 따라서 본 작품을 리듬게임으로써 플레이해보지 않고 점수를 다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쓰고 나니 부끄러워요. 필력이 딸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제작에 많은 도움 주신 LyuU님, Ju_E님, Restia, shiftpsh님, P4Koo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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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자 코멘트

카페가 오만하게 존재했다. 모든 축에 직교하게, 나란하게, 건너지르게, 엇갈리게, 카페가 존재했다. 그리고 카페 안에는 내가 존재하였고, 존재해 왔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나 역시 오만하였고, 오만해 왔고, 오만하고, 오만할 것이다. 카페가 저 멀리 오만에도 존재하기에 나는 오만에도 있었다. 나는 원죄를 짊어지고 있었다. 나는 결백하기를 바랐고 결벽하기를 바랬다.

이 글이 오만하게 존재한다. 표현을 고르자면, 이 글은 오만하다 – 그렇기에 존재한다. 이 글이 잘 쓴 글인지, 못 쓴 글인지, 혹은 있어서는 안 될 글인지,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전까지는 알 수도 없는 주제에. 그런 주제에 이 글은 사 킬로바이트나 되는 용량을 자기 것으로 만든 채 서버 한복판에 누워 자기주장을 펴고 있다. 십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이썬 코드를 열 개쯤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 글은 4KB나 되는 용량을 독점한 채, 통 사라지기를 거부한다.

존재하는 글은 오만한 글이다. 읽히기 전에 쓰였으므로. 그래서 평가되기 전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저속”하다는 단어가 가끔은 오만하게 쓰인다고 생각한다. eicateve et al.의 BOFU2017 출품작[1]에 나오는 남자. 저속이 만연한 이 세계에서 경지를 추구해 나선 그 남자. 그는 자신이 “저속”하다고 부른 것을 이해할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남자는 오만했다. 심연이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심연을 들여다볼 각오를 해야 했다. 햇살이 아니라. 그렇게 한 자만이 원죄를 벗을 수 있다. 평가되기 전에 존재하더라도, 존재한 이후에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만이니까.

위 주장을 검토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정진하고자 합니다”였다. 그래서 대회가 열리고, 임프레가 달리면, 항상 그렇게 대답해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덜 오만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진하겠다”는 표현에는 상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상승하고자 하는 의지에는, “자신은 상승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오만한 나는 여기서 더, 더, 더 높은 어딘가를 향해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 높은 어딘가가 대체 어딘지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든 올라가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채워지리라고, 무작정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니 가사가 저 짝이 나 있었다.

LyuU님이 작년 9월 중순에 녹음본을 건네주셨다. 무려 몇 트랙? 몇 번을 더해봐도 10 더하기 8 더하기 4는 22였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분에 넘쳤다.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은 나는 머리를 싸맸다. 곡을 고쳐서, 결국 더 좋은 곡을 제공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반 년 동안 이 곡이 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샤워하면서 흥얼거려보고, 도입부에 드럼을 넣어보고. EP를 넣어보고. 갈어엎고. 그러다 보니 “더 높은 어딘가”는 나중 문제가 되었고,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작년, 나는 언젠가 탔던 유리카모메에 다시 한 번 탔다. 창 밖을 바라보자 보름달이 떴다. 나는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앞 자리에 앉아서, 카메라로 창 밖을 찍었다. 옆 철로, 임해선 열차의 문이 오만하게 닫혔다. 핫샤시마아아스. 임해선은 숙소가 있던 텐노즈 아일에서 오다이바로 향했다. 혹은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긴자로 향했다. 혹은 관악에서 미시건으로, 파리에서 오슬로를 향해, 월면에서 곤지암으로, 이제 후타바마치에서 프리피야트로. 열차는 행선지와 시발점의 개념을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창 밖에는 뭉게구름이 수없이 무너져 쌓여 이룬 달의 산. 그리고 임해선 너댓 차량이 무너져, 부셔저, 썩어, 가루가 되어 쌓여 이룬 나의 산. 쇳가루가 날자 나도 바람에 날려 점점 사라져갔다. 바람에 날렸다. 코로 흡입하는 가루. 혹은 월석을 빻아 만든 가루. 혹은 설탕. 나는 일 년에 걸쳐, 이 년에 걸쳐, 십 년에 걸쳐, 혹은 오십 년에 걸쳐 사라져갔다. 나는 십열 종대로 서서 피범벅이 된 머리를 떨구었다. 목을 떨군 채로 어스러지는 달을 향해 발을 옮겼다. 나는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갔다. 천 개의 꿈을 보았다. 좋은 꿈이었다. 나는 바다 위를 날으는 새가 되었다. 빛이 번쩍이자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당신과 나는 구름 낀 보름달 아래에서 날이 밝도록 춤을 추었다. 우리가 춤을 춘 마을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달빛 아래에서 우리는 연기와도 같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비가, 비가 내렸으면 했다. 태양만이 무심하게 떠 있었다. 보름달만이 무심하게 떠 있었다. 무지개. 무지개는 언제?

아, 나는 타올랐으면 했구나. 어디 아무 높은 곳에나 올라가고 싶은 게 아니야. 풍선을 타고,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내가 여기에 있노라, 있었노라 하고 타올랐으면 했구나. 타오르면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하지만 자기 몸에 불을 지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겁이 났구나. 내 몸에 등유를 붓지 못했다. 깨작깨작 불을 붙이고는, 어깨에 붙은 불을 허겁지겁 껐다. 아, 그렇다면 혹시 나는 타오르는 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무지개는, 무지개는 언제? 활활 타올랐을 때. 연기가 되어 위로, 위로 올라가면.

뭐가 어찌든 좋게 되었다. 그러자 더 많은 것들이 어찌든 좋게 되었다. 존재하는 Qyubey는 오만한 Qyubey다. 누가 듣기도 전에 평가하기도 전에 곡을 내니까. 그 곡을 들고 가서, 타인에게 감히 들려주었으니까. 해 줄까?라는 소리를 듣고, 이 곡을 완성하는 데에 꼭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비슷한 짓을 많이 하고 다닐 거니까. 이건 이미 전제였다. 내가 앉아 있던 카페의 기저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카페는 죄책감의 선형결합으로 환원되었고 컵과 받침이 서로 일차독립인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 자체로 불변이라 생각했던 보름달의 차원은 2였다. 내 머리 위에 떠 있던 것은 보름달도 무지개가 아니었다. 단지 생경한 응보일 뿐. 그리고 나와 여기에 가깝게 선 그들 / 나를 안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 / 그들에게조차 보이지 않네 / 내 위에서 얼마나 찬란히도 빛나는지. 아, 무지개가 보고 싶었다. 마지막에 본 게 언제더라.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고, 길러졌으며, 살려진 채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는 대놓고 오만했다. 상관없었다.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한 주제에 존재하는 게 문제라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된다. 사후 허가로 충분하다. 그걸로 되었다. 그걸로 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한 번만 불장난을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의식을 치르듯이 성냥불을 내 살갗에 가져다 대었다. 달콤한 고통이 퍼졌다. 한 번만이야. 딱 한 번. 그러자 생경한 응보가 그 내 위에 가만히 있었다. 인과에 따른 응보. 나는 그것을 노려보았다. 그것이 나를 노려보았다.

문득 인과응보라는 말이야말로 참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하므로. 인과응보라는 말은 네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다섯 번째 글자는 없었다. 인, 과, 응, 보. 인과에는 응하는 보가 따른다. 다섯 번째 글자는 묵음 처리되었거나, 묵살되었다. 다섯 번째 글자는 “응”을 수식했다. 그 “응”은 “인과” 와 “보”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글자였다. 그 다섯 번째 글자는 이젠 없다. 사람들이 죽여 버린 까닭이다. 이제 무엇이 인에 따른 응보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대신, 인과응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지, 하는, 오만한 관용구만이 남아 다섯째 글자의 자리를 지킨다.

저것은, 응보가 아니어야 한다. 인과에는 응보가 따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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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ia님, BOFXV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채보 제작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굉장히 아슬아슬하게(2월 20일) 템플릿을 넘긴 탓에 굉장히 촉박하게 작업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이렇게 촉박하게 템플릿 넘기는 작곡가는 제가 마지막이시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븜스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LyuU님, 8월 말, 디엠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제가 미숙한 탓에 작년에는 많은 민폐를 끼쳤습니다. 4KB나 되는 설명서 파일을 읽어주시고, 꼼꼼하게 검토해서 다시 물어봐주시고. 거기에다가 22개나 되는 녹음본을 녹음해서 주셨네요. 감사하다고밖에 말씀을 못 드리는 게 개탄스럽습니다. 그 때, LyuU님께서 DM을 걸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공개할 수는 있었을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번창하세요!

마지막으로 Ju_E님, 그 동안 신세 너무 많이 졌습니다. 사실 처음 BMS 제작에 관심 갖게 된 계기들중에 Lycoris도 있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투고 코멘트를 염두에 둔, 분위기 있는 BGA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보다 코멘트가 어째 더 난해해졌네요. 히히. 앞으로 많은 일들이 있으시겠지만 힘 내서 이겨냅시다!

Qyubey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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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EDOKI」 시리즈
1 / [Moonlight] Evanescence (PABAT! 2018)
2 / [Original Soundtrack] A Short Trip (BOFXV)
3 / [Termination of Service] SIMEDOKI feat. LyuU (PABAT! 2020)
0 / [Rewind] Samsara (PABAT! 2020, 2차 등록기간)
Interlude / [Progress] Humanity (“the interlude”) feat. A.Dokuga, (April 12th)

[1] http://www.youtube.com/watch?v=s7JUS7s95cg